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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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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삼중제국", "오스트리아-헝가리-크로아티아", "오스트리아-헝가리-크로아티아 제국" 등의 문단 리다이렉트 또한 존치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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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기타 == * [[올림픽]]이나 국제 축구 경기에 있어서는 [[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오스트리아]], [[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|헝가리]], [[체코 축구 국가대표팀|보헤미아]] 3개 팀이 출전했다. [[1901년]]에는 [[헝가리 축구 연맹]]이, [[1904년]]에는 [[오스트리아 축구 연맹]]이 설립되었다. 특히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두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경기가 이 시절이던 [[1902년]]에 [[제국의회에 대표되는 왕국들과 영토들|오스트리아]] 수도 [[빈(오스트리아)|빈]]에서 서로를 상대로 하면서 이루어졌으며, 보헤미아 대표팀 역시 [[1903년]] [[성 이슈트반 왕관령|헝가리]] [[부다페스트]]에서 첫 경기를 열었다.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이 붕괴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인 [[1920년대]] 당시 유럽 축구의 주류가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을 구성했던 [[중부 유럽]] 국가들이었다. [[오스트리아 제1공화국|오스트리아]], [[헝가리 왕국(1920년~1946년)|헝가리]], [[체코슬로바키아]], [[유고슬라비아 왕국|유고슬라비아]], [[이탈리아 왕국|이탈리아]], [[스위스]], [[루마니아 왕국|루마니아]]등 이들 나라의 축구단들이 모여서 만든 최초의 국제 축구 대회가 바로 '''[[미트로파컵]]'''으로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하여 중단되기 전까지는 유럽에서 제일 위상이 높은 대회였다. 전쟁이 끝나고 [[1951년]]에 대회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, 미트로파컵을 말고도 또다른 국제대회들이 있었기 때문에 흥행이 안 되어서 다시 중단되었다가 [[1955년]]에 재개되어 대회가 진행되었지만 이 무렵에는 [[UEFA 챔피언스 리그|유러피언컵]]이 창설되어 대회 인기를 모두 [[UEFA 챔피언스 리그|유러피언컵]]에게 빼앗기고 마이너 대회로 전락했다. [[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|1934년 월드컵]]에서 양 국가가 처음으로 대회에 참가했는데, 기묘하게도 8강에서 이 둘이 맞붙었다.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에게 2:1 승리를 거두었지만 준결승전에서 하필 오스트리아-헝가리의 원수였던 [[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이탈리아]]를 만나 0:1로 패배하면서 이탈리아의 우승 제물이 되고 말았다. 그로부터 20년 후, [[1954 FIFA 월드컵 스위스|1954년 월드컵]]에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같은 조에 묶여 헝가리는 준결승전에서, 오스트리아는 3위 결정전에서 [[1950 FIFA 월드컵 브라질|디펜딩 챔피언]]인 [[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우루과이]]를 꺾고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다. * [[사운드 오브 뮤직]]의 등장 인물이자 모델인 [[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트랍|트랍]] 대령은 이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의 해군 잠수함장이자 사령관 출신이다. 제국이 해체되고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수립된 뒤에도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것이다. * [[2017년]] 연립정부에 참여한 [[오스트리아 자유당]] 대표는 TV토론에서 [[폴란드]], [[헝가리]], [[체코]], [[슬로바키아]]의 지역협력체인 [[비셰그라드 그룹]]에 오스트리아가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. 오스트리아까지 비셰그라드 그룹에 가입하면 이들 나라의 지도는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과 비슷해진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1&aid=0009607635|#]] 물론 비셰그라드 그룹의 창설 목적인 구 공산권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위한 교류 및 협력과 [[합스부르크 가문]]에 반대하기 위한 폴란드, 헝가리-크로아티아, 보헤미아 국왕들의 모임에서 유래한 이름을 고려하면 오스트리아의 가입 가능성은 희박하다. * [[조선]]과는 [[1892년]]에 [[조오수호통상조약]]을 체결해 수교했다. 당시 다른 통상조약들이 그랬듯이 이 조약도 [[최혜국 대우]]와 [[치외법권]] 등을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으며 체결 과정 역시 군함을 이용한 군사적 위협이 수반된 [[포함외교]]의 성격이 있었다. [[https://gall.dcinside.com/mgallery/board/view/?id=austria&no=4134&s_type=search_subject_memo&s_keyword=.ED.8F.AC.ED.95.A8&page=2|#]] * [[제2차 세계 대전]] 이후 [[연합군 점령하 독일|연합국 점령시기]]에 독일 분할안을 논할 때 [[윈스턴 처칠]]이 [[제1차 세계 대전]] 이전처럼 [[오스트리아]]와 [[헝가리]]를 합치려고 했다. 정확히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, 오스트리아와 친근했던 [[바이에른]] 지방까지 묶어 남독일로 만들려 했다.[* 그러나, 이 계획은 또 다민족 문제로 해체 될 경우 약해진 틈을 타 독일이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를 다시 합병할 수도 있을 위험으로, 실행되지 못했다.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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